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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소식 R.I.P. 아론 슈와츠 (Aaron Swartz)

2013.01.14 15:58

cc 조회 수:38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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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현지 시간으로 11일,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를 비롯한 오픈 인터넷 진영 쪽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만 26세의 아론 슈와츠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전세계 CC 네트워크를 비롯, 많은 사람들이 비통에 잠겼습니다.

아론 슈와츠를 수식하는 말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천재소년.’ 이미 14세 때부터 해커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는 공동 크레딧으로 XML를 이용해 인터넷 페이지를 구독할 수 있는 RSS Specification 를 만들었으며, 10대 때 만든 인포가미라는 사업을 통해 웹사이트 레딧(한국으로 치면 디씨인사이드 같은 대형 콘텐츠 추천 커뮤니티로, 수많은 인터넷 콘텐츠가 태어나고 유행이 시작 되는 곳. LOL Cat 같은 미국발 인터넷 유머는 대부분 이곳에서 유행하기 시작) 의 탄생에 기여했습니다. 이 사이트가 비싼 값에 팔리면서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이미 큰 돈을 벌기도 했죠. 그러나 그 또래처럼 아이다운 면도 있었던가봅니다. 하버드 버크만 센터의 데이빗 '닥' 시얼스 교수는 어린 시절 액정에 금이 간 구형 맥북을 들고 엄마 차로 센터를 방문하곤 했던 모습으로 그를 회고했습니다. 

‘혁명가.’ 아론은 기술적으로 뛰어난 해커일 뿐만 아니라, 이를 세상을 바꾸는 데 쓰고 싶어하는 뜨거운 심장의 소유자였습니다. SOPA/PIPA 반대 시위와 인터넷 데모를 이끈 온라인 단체 중 하나인 DemandProgress를 만들었고, 직접 현장에서 인터넷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입법자들과 배후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으며, RootStrikers, Avaaz 등의 시민단체와 협력하는 활동가이기도 했습니다.

‘과격파.’ 아론에 대한 평이 갈리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인데요. 그는 개방과 공익을 추구한 가치관을 가진 동시에, 코딩을 무기로 쓰는 저돌적인 활동가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공 데이터를 개방하라고 서명을 할 때에, 그는 그의 해킹 실력으로 직접 데이터를 긁어내다 배포하는 식이었지요. 미국 연방 법원의 판례(퍼블릭도메인이지만 열람료를 내야 했습니다) 데이터베이스인 PACER 라이브러리의 20%를 P2P로 공유했다가 무죄판결을 받았던 사례는 유명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의 의도와 결과가 어찌됐던 간에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것은 민주적이지 않았다고 비판했으나, 그의 이런 급진적인 액션이 경직된 관료주의적 시스템에 경종을 울려왔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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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식 교수와 아론 슈워츠(당시 16세). CC BY (c) Rich Gibson

아론과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는 아주 일찍부터 인연이 있었습니다. 단체가 탄생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2002년, 그는 16세의 나이로 테크팀에 합류했습니다. CCL 특유의 레이어를 코딩하고, 아카이브.org를 만드는 데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탁월한 해커였고, 초기 인터넷의 자유로움을 유년시절부터 누리며 자랐으며, 인터넷을 향한 위협이 점점 조여들어오는 것을 유년에서 청소년으로, 청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라가면서 바로 현장에서 목격한 산 증인이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내의 많은 이들이 그를 깊이 사랑한 친구들이었습니다.

아론을 죽음으로 몰고간 가장 큰 원인은 우울증이었습니다. 유명한 오픈 인터넷 활동가인 코리 닥터로우는 그의 친구 아론은 본래 가슴이 뜨겁고 조금 과격한 면도 있어서 때론 그의 멘토들과도 갈등을 빚을 정도였으니, 그의 천재성이 인터넷의 자유를 빼앗겨가는, 혹은 개방이 정체된 우리의 상황을 견딜 수 없게 했지 않을까 하고 추측했습니다. 이 비극을 맺기까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그의 인간적인 면에 주목한 것입니다.(따라서 그의 죽음을 인터넷 투사처럼 투영하는 프레임으로의 연결에는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많은 이들은 이를 단순 자살로 볼 수 없는, 시스템적 타살로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론은 2011년 JSTOR 라는 온라인 학술논문 액세스 서비스에 MIT 네트워크 (MIT 학생은 JSTOR에 무료로 액세스 할 수 있습니다) 를 통해 접속, 대량의 논문을 다운 받았습니다. 아론은 이 논문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본인의 컴퓨터에 저장해놓기만 했습니다. 당연히 상업적인 활동은 전무했습니다. 그가 이 논문들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논문의 오픈액세스가 갖고 있는 가능성, 그러니까 학술논문이 자유로운 접근을 허락할 때에 일어날 지식의 확산과 폭발을 직접 실험하려고 한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그러나 그는 이로 인해 기소 되었으며, 그의 거의 전재산을 벌금으로 물어야함은 물론 35년에서 50년형까지 받을 수 있는 재판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MIT 역시 이 기소 내용을 옹호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로렌스 레식 교수는 해당 사건을 초기에 변호했음과 동시에 그의 성장을 어릴 때부터 지켜본 멘토로서, 대단히 애통해하는 장문의 추모글을 남겼습니다. 때로 그의 방법론에는 동의하지 않았으나, 그는 평생 오로지 공익을 위해서만 해킹해왔고, 심지어 JSTOR 사건에 있어서는 해당 논문들을 재배포하거나 상업적으로 이용하지도 않았는데 이런 식의 기소는 미국의 정의가 무너졌다고 밖에 볼 수 없다는, 아론과의 우정과 법학자의 양심으로 작성한 글이었습니다. 또한 저명한 IT 구루 중 하나인 다나 보이드는 그는 천재임과 동시에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번 사건은 그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잘못된 시스템을 고치려는 해커들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로 정의하고 아론을 본보기로 삼으려는, 사법부를 비롯한 가진 자들의 파워 게임이었을 뿐이었다고 질타했습니다.

몇몇 언론에서는 레딧의 공동 창업자인 천재 해커가 요절했다는 식의 겉핥기 보도를 기계적으로 내보냈습니다. 그러나 아론의 죽음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훨씬 더 큽니다. 그의 인생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개인의 몫이지만, 그가 평생을 바쳐 싸워온 가치는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정보는 개방되고 공유될 때에 더 많은 혁신을 낳을 수 있다는 것, 인터넷은 자유로울 때 가장 멋진 공간이라는 것 말입니다.


그의 죽음은 꽤 큰 파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정보 공개를 향한 그의 유지를 받드는 움직임도 있고, 젊은 해커이자 자유 인터넷 활동가였던 그를 본보기로 삼으려고 했던 사법부에 대한 분노도 보이며, 일종의 복수를 하려하는 이들도 보입니다. 한국 시간으로 14일 한 때 MIT는 Anonymous로 추청되는 이들에 의해 디도스 공격을 당했으며, 트위터에는 자신의 논문을 무료로 개방하는 학자들의 #pdfTribute 라는 해시태그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세계의 저명한 IT 인사들과 유수의 언론들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추모하고 있습니다. 하단의 리스트를 보시면 각 계의 추모글과 기사들 모음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짧은 생을 영화처럼 살다간 아론 슈와츠. 최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잡스의 전기 영화처럼, 언젠가는 그의 생을 다룬 영화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아론 개인의 삶은 비극으로 마쳤을지 모르지만, 좀 더 긴 안목에서의 영화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기란, 인터넷을 사용하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렸습니다.




이 내용은 정다예(@dayejung) 가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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